김삿갓 일화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김삿갓은 조정에 몸을 담지도 않았고 서울에서 양반 노릇을 하지도 않아 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제멋대로 시를 짓고 읊었다. 어느 땐가 사람이 죽어 그에게 부고를 써달라고 하자, 그는 유유화화(柳柳花花)라고 써주었다. '버들버들하다가 꼿꼿해졌다'는 뜻이다.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현한 것이요, 그 되지 못하게 한자로 정중하게 쓰는 부고가 못마땅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가 개성에 갔을 적에 어느 집 문 앞에서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자, 그 집주인은 문을 닫아걸고 땔감이 없어 못 재워준다고 했다. 이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시가 이러했다.

고을 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을 닫아걸며
산 이름은 송악인데 어찌 땔감이 없다 하느냐

邑名開城何閉城(읍명개성하폐성) :
山名松岳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 : 어찌 기 땔나무 신

 이 시는 해학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문 또는 한시를 대중화한 것이다. 이런 것은 언문을 섞어 짓는 그의 모습에서 또 달리 나타난다. 그는 한시를 지을 줄 모르고 언문만 깨우쳤다고 거들먹거리는 선비를 농락하였다. 그래서 언문을 지어보라고 하자, 이렇게 읊었다.

人間은 여기저기 有라.
소위 언뚝비뚝 客이
평생 쓰나다나 酒(주)라

 이 아니 놀라운 솜씨인가?

김삿갓은 삐뚤어진 세상을 농락하고 기성 권위에도 도전하고 민중과 함께 숨쉬며 탈속한 '참여시인'이었고 '민중시인'이었다 하겠다.

(자료 출처 : 이이화의 '이야기 인물한국사'에서)

 천하를 방랑하던 김삿갓이 금강산에 이르게 되었다. 수풀사이로 난 작은 길을 걸어가다가 절을 발견한 김삿갓은 아픈 발을 쉴 겸 법당으로 가는 층계를 올라갔다. 법당 대청 안에는 스님 한 분과 유건을 쓰고 도포를 입은 젊은 선비 한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에헴!"

김삿갓은 사람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큰기침을 했다.

"누구요?"

중이 먼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물었다.

"절 구경을 좀 왔소이다."

김삿갓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며 다짜고짜 법당 안으로 척 올라섰다.

"이 양반이 무례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올라오는 게요?"

유건을 쓴 젊은 선비가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날카롭게 내뱉었다.

"법당이지요, 자비로우신 부처님께서 어디 양반 쌍놈 가리신 답니까?"

"아니 이 사람이?"

선비는 어이가 없는 지 김삿갓의 행색을 살폈다. 차림새는 비록 남루했지만 글줄이나 읽은 사람인 듯 해서 함부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젊은 선비는 이 무례한 방문객을 보기 좋게 물리칠 계책을 재빨리 궁리했다.

"어디서 오셨소?"

이번에는 중이 말문을 열었다.

"예'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올시다. 잠시 쉬어갈까하여 들렀습니다."

김삿갓은 앉으라는 말도 없는데 그들 곁에 털썩 주저앉으며 넉살좋게 말했다.

"여보, 우린 지금 긴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리를 비켜 주시오."

선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노골적으로 그를 내쫓으려 했다.

"허허, 보아하니 은밀한 말씀을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참 딱도 하시오."

김삿갓은 냉큼 일어날 기색은커녕 점점 그들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질 작정이었다.

"아니 뭐가 딱하단 말이오?"

중이 험악한 기세로 쏘아 부쳤다.

"스님, 긴요한 이야기라면 뒷켠 승방에서 나눌 일이지 어찌 부처님 앞에서 나눈단 말씀이오, 앉아만 계셔도 구만리를 내다보시는 부처님은 두렵지 않고 한낱 지나가는 이 과객은 두렵단 말이오."

"뭣이?"

선비와 중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말을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인간은 속일 수 있어도 부처님은 못 속이는 법, 지금까지 부처님 앞에서 비밀 이야기를 하다가 보잘 것 없는 과객하나를 쫓아내려던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선비는 이 낯선 과객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다. 글겨루기를 해서 내쫓을 심산이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풍류과객을 자처하며 어설픈 글귀나 읊조리고 밥술이나 얻어먹으려는 부류들을 많이 겪어보았지만 그런 사람들 치고 제대로 시 한 수 읊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선비는 김삿갓도 그런 사람중의 하나 라고 생각해서 글짓기로 콧대를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우선 상대방의 실력을 알아야 하겠기에 먼저 딴청을 피웠다.

"보아하니 풍월께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진정 풍류를 아는 선비라면 내 톡톡히 선비대접을 하겠지만 글에 자신이 없다면 저쪽 주방으로 가서 찬밥이나 얻어먹고 가시구려."

 김삿갓은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오냐, 네놈이 글줄이나 읽은 모양인데 어디 한 번 혼나봐라.`

이렇게 선비를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정색을 하고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거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외다. 제가 깊이 배운 바는 없으나 일찍이 부친 덕에 천자문을 읽어 하늘천 따지는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있으며 어미 덕으로 언문 줄이나 깨우쳤으니 하교해 주시면 가르침을 받겠소이다."

 김삿갓의 이 같은 말에 중이나 선비는 더욱더 눈살을 찌푸렸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건 은근한 도전이다.

"좋소, 그럼 내가 먼저 운을 부를 테니 즉시 답하시오."

선비는 이왕 내친김에 이렇게 말하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타."

그의 입에서 `타`란 말이 떨어졌다.

"타라니, 이건 한문풍월이요, 아니면 언문 풍월이요?"

김삿갓은 눈을 빛내며 선비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언문 풍월이지."

김삿갓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투였다.

"좋소이다. 내 답하리다. 사면기둥 붉게 타!"

"또 타!"

"석양 행객 시장타!"

"또 타!"

"네 절 인심 고약타!"

"........"

`타`자가 떨어지기 바쁘게 김삿갓이 대답하니 선비는 어이없는 모양이었다. 더구나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만 나오니 다시 더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무슨 창피를 당할지 모르는 일 이였다.

김삿갓은 선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타!`하고 뱉으면 `지옥가기 꼭 좋타!` 하고 내쏠 작정이었다.

<중략>

김삿갓은 그들의 심보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설사 이들이 풍월이나 같이 하자고 수작을 걸어온다 할 지라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같아서는 침이라도 뱉어주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어서 글로서 그들을 희롱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묵묵부답인걸 보니 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구려. 내 한 수 더 읊어 드리리다."

김삿갓은 이어 막힘 없이 글귀를 읊었다.

승수단단은 한마랑이오.
(僧首團團 汗馬崇)
유두첨첨은 좌구신이라
(儒頭尖尖 坐狗腎)
성령동령은 동정하고
(聲令銅鈴 銅鼎)
목약흑초는 낙백죽이라.
(目若黑椒 落白粥)

둥굴둥굴한 중대가리는 땀찬 말좃대가리요
뾰족뾰족한 선비 머리통 상투는 앉은 개 자지로다.
목소리는 구리방울을 구리 솥에 굴리듯 요란스럽고
눈알은 검은 산초 열매가 흰죽에 떨어진 듯하구나.

정말 지독한 욕설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중과 선비는 뒤늦게 자기들을 욕하는 글임을 알아차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 이런 죽일 놈을 보았나?"

선비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김삿갓은 벌써 섬돌 아래에 내려가 있었다.

"여보 선비님, 눈을 부릅뜨니 정말 흰죽에 산초 알이 떨어진 것 같소이다. 허허허....."

김삿갓은 너털웃음을 날리며 다시 정처 없는 발길을 옮겼다. (출처 : 소설 <꺼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풍자적, 해학적, 조롱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김삿갓의 에피소드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내용 연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이해와 감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김병연 = 김립 金笠 [1807~1863]

  1807(순조 7)∼1863(철종 14).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경기도 양주 출생.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 (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안근(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묵었다. 이때 둘째아들 익균(翼均)을 낳았다.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았다. 도산서원(陶山書院)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동안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 김성수 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 계룡산 밑에서, 찾아온 아들 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또 찾아온 그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同福)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신세를 졌다. 그 뒤에 지리산을 두루 살펴보고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김병연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怜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그 파격적인 양상을 한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스무나무 아래 앉은 설운 나그네에게/망할놈의 마을에선 쉰밥을 주더라/인간에 이런 일이 어찌 있는가/내 집에 돌아가 설은 밥을 먹느니만 못하다(二十樹下三十客 四十村中五十食 人間豈有七十事 不如歸家三十食).” 이 시에서 전통적인 한시의 신성함 혹은 권위에 대한 도전, 그 양식 파괴 등에서 이러한 파격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 김병연 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복수성은 당시 사회의 몰락한 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과거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와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야유·기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다.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 金笠詩集≫이 있다.

≪참고문헌≫ 綠北集(黃五), 海藏集, 大東奇聞, 金笠詩集(李應洙編, 有吉書店, 1939), 金笠의 詩와 諷刺精神(金容浩, 漢陽 3권 7호, 1964), 金笠硏究(尹銀根, 고려대학교교육대학원석사학위논문, 1979).(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김립 시집

 조선 후기의 시인 김병연(金炳淵)의 시집. 김립(김삿갓)은 그의 별명이다.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각지에 흩어진 시편들이 수집되어 나온 이래 여러 종이 전한다.

① 이응수의 ≪김립시집≫ 1939년 2월 학예사에서 발행하였다. 이응수는 대학시절부터 김삿갓에 흥미를 가지고 신문이나 잡지 또는 자신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시를 수집하였다. 총 177수를 수록하였다. 전편에는 걸식 12수, 인물 24수, 영물(詠物)1·2에 24수와 18수, 산천누정(山川樓亭) 24수, 잡편 24수가 수록되어 있다. 후편에 19수와 부록에 31수 등이다.

1941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증보판을 냈다. 그 체재는 첫 시집과 거의 같다. 그리고 총 334수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뒤에 나온 다른 시집과 방랑기의 참고가 되어 왔다. 시의 양으로 최대이다. 또 김립에 관한 이응수의 논문이 실려 있다. 기고가(寄稿家)의 이름과 주소가 작품 뒤에 명기되어 있다.

② 박오양(朴午陽)의 ≪김립시집≫ 1948년에 첫 출판된 이래로 1956년 대문사(大文社), 1975년에 덕영문화사(德榮文化社), 1978년에 문원사(文苑社)에서 복사출판하였다. 총 237수가 수록되어 있다.

내용별 분류나 시의 유형을 고려하지 않고 편집되었다. 이응수의 잘못을 바로잡은 흔적과 한두 글자가 다르고 행이 다를 뿐이다. 이응수의 것을 그대로 이용한 듯하다.

③ 김일호(金一湖)의 ≪김립시집≫ 1953년 처음 나○다. 1957년에 학우사, 1977년에 서울출판사에서 복사되어 나왔다. 총 213수를 수록하여 걸식편 12수, 인물편 41수, 동물편 14수, 영물편 46수, 금강산편 13수, 산천누대편 22수, 잡편 55수로 되어 있어 분류는 이응수를, 수록한 시들은 박오양을 따른 것이다.

④ 김용제(金龍濟)의 ≪김립방랑기 金笠放浪記≫ 1958년에 개척사에서 간행하였다. 이응수 및 박오양에게 의존했다. 때로는 개작의 흔적도 보인다.

⑤ 김용섭(金龍燮)의 ≪김립시화 金笠詩話≫ 1955년 박영사에서 나온 뒤에 ‘김립방랑여정(金笠放浪旅程)’으로 이름이 바뀌어 1977년에 다시 나왔다. 이 책은 자신이 수집한 것과 박오양·김일호·김용제의 것을 참고로 하였다고 했다.

⑥ 기타 ≪김립시집≫ 이문우(李文友)의 ≪김삿갓≫이 1977년 신문출판사에서, 김용철(金龍喆)의 ≪방랑시인 김삿갓≫이 1977년 홍신문화사에서 나왔다.

김병연의 시는 대부분 구전되어 왔다. 농민이나 유생들에 의하여 기록되고 전수되면서 많은 오자가 발생하였다. 따라서 각본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그의 시의 내용은 크게 과시(科詩), 정통적인 한시, 육담풍월 그리고 언문풍월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파자시(破字詩) 계통은 그의 희작정신(戱作精神) 및 풍자정신이 잘 반영되어 있다.

≪참고문헌≫ 金笠硏究(尹銀根, 高麗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9), 김삿갓시연구(朴惠淑, 서울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8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