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희망의 문학

나 보기가 역겨워진달래꽃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희망의 문학 지은이 : 김소월(金素月)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민요시, 낭만시

희망의 문학 율격 : 내내율(7.5조 3음보의 민요적 율조)

희망의 문학 성격 : 향토적. 민요적. 여성적. 유교적, 전통적

희망의 문학 어조 : 전통적인 여인의 애절한 목소리(애상적 호소 속에 자신의 충격과 슬픔, 그리고 이별이 가져다 줄 아픈 상처를 은근히 드러냄으로써 떠나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음)

희망의 문학 구성 :

   1연  체념을 통한 이별의 정한

   2연  떠나는 임에 대한 축도(祝禱)

   3연  원망(怨望)을 초극(超克)한 사랑

   4연  인고(忍苦)의 의지로 이별의 정한 극복

희망의 문학 제재 : 진달래꽃. 이별

희망의 문학 주제 : 이별의 정한(情恨)과 그 승화(昇華), 이별의 슬픔과 사랑의 승화

희망의 문학 표현 : 직서적. 역설적. 전통적인 정서와 율격. 도치와 반복과 반어와 명령법 등 사용. '-오리다'의 반복적 사용(각운)

      ① 전통적 정서(한·애수)와 율조(3음보의 민요 가락)

      ② 유교적 휴머니즘

      ③ 역설과 반어의 표현

      ④ 연 단위의 규칙적 배열

      ⑤ 헌화가 - 도솔가 - 가시리 - 황진이 시조 - 아리랑 - 진달래꽃으로 정서적 전통 계승

희망의 문학 출전 : <개벽>25호(1922. 7)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나 보기[(임이 나를) 보기-동사]가 역겨워[마음에 거슬리고 싫어]

가실 때에는[반드시 다가올 미래의 상황/가정적 이별 상황 제시] - 7·5조의 3음보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하고 싶은 많은 이야기를 모두 참고, 원망이나 만류의 말없이 보내 드리겠습니다. 유교적 전통 사회에서 여성이 지닌 인종과 체념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말로 고려 가요의 '가시리'의 정서적 맥을 잇고 있음 / 반어적, 여성적 어조로 내면은 헤어지기 싫음 / 드리오리다. 뿌리오리다. 흘리오리다는 각운에 의한 음악적 리듬감 형성]

 

영변(寧邊)에 약산(藥山)[향토적 정감 / 평북의 지명으로 약초가 많다 하여 약산이라 하였다는 설과 약수가 있어 약산이라 하였다는 두 설이 있으나, 어느 편의 이야기로 보나 산에 약초와 약수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진달래꽃,[약산 동네에 피는 진달래꽃을 들어 향토적 정감을 유발시키며, 시적 공간을 '영변→약산→진달래꽃'으로 점차적으로 축소시킴으로써 상징적 효과를 고조시키는 표현. 점강법. 상징법 / 두견화-소쩍새와 연결 : 사랑과 한의 표상 / ① 임을 위한 끝없는 헌신의 자세   ②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의 승화  ③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  ④ 사랑의 비극적 종말을 심미화하기 위한 구체적 상징물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임이 가시는 길에 내 사랑의 표현으로 꽃을 한 아름 뿌려 가시는 길을 축복하겠습니다. 불교의 산화공덕(散花功德)의 이미지] - 서정적 자아의 내적 심리 상태와 실제적 행위 사이의 어긋남을 보여 줌으로써 시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연

 

(임께서)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서정적 자아의 분신 / 散花功德(꽃을 뿌리며 부처를 공양하는 일로 좋은 일을 행한 덕으로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능력. 종교적으로 순수한 것을 진실(眞實) 공덕이라 이르고, 세속적인 것을 부실(不實) 공덕이라 한다)의 의미가 담겨 있음.]

사뿐히 즈려['눌러, 저질러'의 평안 사투리] 밟고[화자의 자기 희생 의지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시구는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임께서 밟고 가시는 그 붉은 진달래꽃은 임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이며, 그 사랑을 버리고 가실 때에도 임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겠다는 뜻. 희생을 통한 사랑의 승화 과정이 나타난다./ 토속적 정감(사랑의 확인)  시적 정감 고조][ '진달래꽃'의 서정적 자아인 '나'는 여성이고, '꽃'은 자아의 분신이다. 이 시는 '즈려 밟히는' 외상(外傷)과 내면적 희생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역설적 의미를 표상하고 있다. '즈려 밟히는' 외상(外傷)과 내면적 희생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행위는 일반인의 정서로 보아서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말을 연결하여 심오한 사랑의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가시는 임이 나의 슬픈 모습을 보고 마음이 상하실까 걱정스러워 죽는 한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뜻.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신. 한국 여인의 인고(忍苦)와 함께 애절한 정한(情恨)을 암시한다./반어적 표현 irony(속으로 많이 울겠다)과 도치법 사용 / 체념한 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간절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다]

 * 이 시의 '진달래꽃'과 다음 시의 밑줄 친 '꽃'이 함축하고 있는 공통적인 의미는?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내면적 감정의 표현인 사랑의 표현

자줏빛 바위 가에 /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 헌화가

나 보기가 역겨워 -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1연) : 이별의 상황을 서정적 자아는 이미 예견하고 있으며, 그 상황을 애원이나 원망보다는 체념과 극기(克己)와 자기 희생으로 승화시켜, 가는 임을 붙들지 않겠다는 유교적 전통 사회의 여성이 지닌 인종과 체념을 드러냄.

영변(寧邊)의 약산(藥山) -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2연) : 떠나는 임에 대한 축복의 태도가 나타나 있다. 떠나는 임의 발길에 자신의 분신인 '진달래꽃'을 뿌려 준다는 것은 상징적 가정이다. 그만큼 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표출되어 있다. '아름 따다'는 근육 감각적 심상이라 할 수 있다. 이어 나오는 4연의 '즈려 밟고'도 근육 감각적 표현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오리다.(4연) : 이 시의 표면적인 의미는 '떠나 보냄'이다. 그러나 속뜻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강한 의지'이다. 이런 서정적 자아의 태도는 '가시리'에서 임의 돌아옴을 기대하고 소원하는 끝맺음과는 표면적으로 아주 대조적이지만 내면에서는 동일하다. 그것은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속으로 몹시 울겠다.'는 뜻의 아이러니[irony-반어(反語)]이기 때문이다. 또한, 3연에서 고조된 감정을 수미쌍관의 결구법으로써 승화시켰다. 반어법과 도치법의 표현이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7·5의 음절수를 기초로 한 3음보 율격의 민요조 가락을 밟고 있다. 여기에 향토적인 시어의 활용, 1연의 반복에 의한 수미쌍관(首尾雙關)식 결구 '∼옵소서'와 같은 여성적 화법 등이 효율적으로 어우러져 승화된 이별의 정한(情恨)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여성이다. 표면적으로 화자는 임과의 이별이라는 비극적 상황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체념의 자세를 보여 준다(1연). 물론, 이 같은 자세는 가시는 임의 앞길에 꽃을 뿌려 축원하고(2연), 임이 그 꽃을 즈려 밟고 가길 바라는(3연) 진실되고 헌신적인 사랑을 품고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축복의 이면에는 임을 절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 시는 자유시지만 7·5조를 기초로 한 3음보격의 외형률을 보이고 있다. 그 형태를 분석해 보면, 제 2연의 '영변의 약산/진달래꽃'만이 거의 4·4조에 가까운 음수이고 그 밖의 모든 부분은 7·5조의 음수로 배열되어 있다. 7·5조는 일본 시가의 율조인데, 그것이 우리 시에 쉽게 수용된 것은, 7·5조가 4·3·2·3조 또는 3·4·3·2조 등의 음절수로 분해되어 우리 전통 시가의 율격과 쉬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의 이미지를 살펴보면, 사랑하는 임과의 이별이라는 극한적 상황을 '진달래꽃'을 통하여 초극하려는 역설적 의지가 담겨진 작품이다. 내용상으로 보아 '진달래꽃'은 붉고 아름다운 서정적 자아의 사랑의 완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정적 자아가 지니고 있는 원망과 슬픔을 상징하는 동시에 떠나는 임에게 끝까지 자신을 헌신하려는 순종과 정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옛 시에서도 '진달래꽃'은 민족 정서의 대유적(代喩的) 상징물로써 존재하는데, 특히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하는 작품에서 시인의 분신으로서 표현되기도 한다.

 또, 이 시의 서정적 자아는 김소월 시들이 거의 그렇지만 여성이다. 소월 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시가들은 여성을 서정적 자아로 가지고 있다. 우리 시의 여성편향은 존재의 나약성과 함께 잠재된 저항력의 지속적 표출의 결과라고도 말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섬세하고 부드러우며 순화적인 감정 승화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진달래꽃'은 설화적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데, 여성의 인종과 남성의 유랑성을 비극적 상황으로 설정해 놓았다. 이런 비극적 장면 속에서의 여성적 목소리는 자신의 고난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의지와 자세로 변하는 과정을 겪게 되고, 폭력과 인종의 굴레를 달관하는 이상적 의지를 실현하게 된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1

 이 시는 한국적 정한(情恨)의 세계를 시적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우리 전통 시가의 맥을 이루는 이 '정한(情恨)'의 세계는 고려가요 '가시리'나 '서경별곡', 그리고 전통 민요인 '아리랑'으로 이어져 내려온 정서이다. 그리고 이 시가 결코 천박한 이별의 슬픔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그 '한'을 또한 스스로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시적 화자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7.5조의 3음보를 주조로 하고 있다. 3연의 고조된 수미쌍관의 결구법으로 이 작품을 끝맺고 있다.

  연을 구분하여 살펴보면 1연을 여성적 순응주의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보기가 싫어서 떠나는 임에게 어떠한 불평도 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것이 1연의 내용이다. 그러나 얼핏 보기에는 단순한 듯한 이 시적 진술 속에는 한 마디로 단정되기 어려운 아주 미묘하고 야릇한 감정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그 어법에서 볼 때 여성으로 짐작되는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 적어도 임과 언제 이별하더라도 무방하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진심을 그 속에 숨겨 놓고 있다. 표면적인 과장과 허세가 역설적으로 그의 내면적 진실을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특유의 과장은 제 2, 3 연에서 확인된다. 임의 가시는 길에 진달래꽃을 뿌릴 테니 그것을 즈려 밟고 가 달라고 화자는 말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린다는 것을 물론 비현실적 행위이지만,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이 변함없다는 데 있다. 그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花功德)-임의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그 걸음을 평화롭게 한다는 '축복'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표면적인 뜻에 매달려 시를 이해할 때, 우리는 거기서 한 여인의 비현실적이고 싱거운 포부밖에는 발견하지 못한다. 이 축복의 이면에는 오히려 가겠다는 임을 강력하게 만류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가겠다는 임을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그를 붙잡아 두는 최상의 방법임을 그는 자각했던 듯하다.

  4연은 반어법이 구사된 부분이다. 정작 임이 자기 곁을 떠나면 슬프고 분하여 오열에 젖거나 자살이라도 할 계제요 심각한 고비인데 오히려 결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눈물마저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임을 이별하게 될 때의 화자의 극도의 슬픔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죽어도 아니 눈물' 같은 적절한 생략적 도치법은 인상적 변화의 묘미를 가져다 준다. 이를 유교적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감정이란 측면에서 보기도 한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소월시의 정수(精髓)로,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가시리],[서경별곡],[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4연 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즉,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이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 공덕(散華功德)'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流浪) 및 잠적(潛跡)-를 원형(原型)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의 '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 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3

 주지하다시피 한과 애수로 일컬어지는 한국적 고유 정서와 전통적 민요조 가락은 소월시를 이루는 두 원소(元素)이자, 소월시를 존재하게 하는 두 원인(原因)이다. 민족 최대·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소월이 남긴 150여편의 시는 생전에 간행한 시집 {진달래꽃}으로 묶였고, 사후(死後)에 김억이 엮은 {소월시초}(1939)에 이어 지금까지 수많은 시집이 간행되어 최대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시가 전국민의 절대적 사랑을 받게 된 원동력과 흡인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소월시가 남과 다른 숭고한 이념이나 사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요, 시대적 고뇌를 온몸으로 포용하고 있는 지사적(志士的) 풍모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그것은 모두(冒頭)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의 작품 속에는 민족의 고유 정서와 맞닿아 흐르는 어떤 소박하고 진솔한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간결하고 소박한 가락,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구화체(口話體)를 활용한 7·5조의 대중적 리듬과, 이별·그리움·체념 등으로 대표되는 민중적 주제 의식을 담고 있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그 전통적 정서에 닿게 되어 소월시만이 갖는 처절한 호소력과 강렬한 감동을 전수받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소월시의 정수(精髓)로, 이별의 슬픔을 인종(忍從)의 의지력으로 극복해 내는 여인을 시적 자아로 하여 전통적 정한(情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 정한의 세계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가시리>, <서경별곡(西京別曲)>, <아리랑>으로 계승되어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 정서와 그 맥을 같이한다.

 4연 12행의 간결한 시 형식 속에는 한 여인의 임을 향한 절절한 사랑과 헌신, 그리고 체념과 극기(克己)의 정신이 함께 용해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즉, 떠나는 임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는 동양적인 체념과,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나는 임이지만, 그를 위해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는 절대적 사랑, 임의 '가시는 걸음 걸음'이 꽃을 '사뿐히 즈려 밟'을 때, 이별의 슬픔을 도리어 축복으로 승화시키는 비애, 그리고 그 아픔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는 인고(忍苦) 등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진달래꽃'이다. 이 '진달래꽃'은 단순히 '영변 약산'에 피어 있는 어느 꽃이 아니라, 헌신적인 사랑을 표상하기 위하여 선택된 시적 자아의 분신이다. 다시 말해,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아름답고 강렬한 사랑의 표상이요, 떠나는 임에 대한 원망과 슬픔이며, 끝까지 임에게 자신을 헌신하려는 정성과 순종의 상징이기도 하다.

 떠나는 임을 위해 꽃을 뿌리는 행위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까닭은 임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시적 자아의 사랑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꽃을 뿌리는 행위의 표면적 의미는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산화공덕(散華功德)'   임이 가시는 길에 꽃을 뿌려 임의 앞날을 영화롭게 한다는 '축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임을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만류의 뜻이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그저 이별을 노래하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별이라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는 존재론의 문제로도 확대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월은 그의 다른 대표작인 <산유화(山有花)>에서처럼, 여기서도 '진달래꽃'의 개화와 낙화를  사랑의 피어남과 떨어짐, 즉 만남과 이별이라는 원리로 설정함으로써 마침내 사랑의 본질을 깨달은 그는 더 나아가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생성과 소멸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인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버림받은 여인과 떠나는 남성 간에 발생하는 비극적 상황이 초점을 이루는 설화적 모티프   여성의 인종(忍從)과 남성의 유랑(流浪) 및 잠적(潛跡)   를 원형(原型, archetype)으로 하고 있는 이 시는 여성 편향(女性偏向, female complex)의 '드리오리다'·'뿌리오리다'·'가시옵소서'·'흘리오리다' 등의 종지형을 의도적으로 각 연마다 사용함으로써 더욱 애절하고 간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피학적(被虐的, masochistic)이던 시적 자아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는 마지막 시행과, '걸음 걸음'·'즈려 밟고 가시옵소서'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눈물만 보이며 인종하는 나약한 여성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떠나는 남성이 밟고 가는 '진달래꽃' 한 송이 한 송이는 바로 여성 시적 자아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꽃을 밟을 때마다 자신이 가학자(加虐者, sadist)임을 스스로 확인해야 하는 것을 아는 시적 자아는 그러한 고도의 치밀한 시적 장치를 통해 떠나는 사랑을 붙잡아두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아울러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4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시. 그러나 가장 잘못 읽혀져 온 시-그것이 바로 김소월의「진달래꽃」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진달래꽃」이 이별을 노래한 시라고만 생각해왔으며 심지어는 대학입시 국어 문제에서도 그렇게 써야만 정답이 되었다. 하지만「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라는 그 첫 행 하나만 조심스럽게 읽어봐도 그것이 결코 이별만을 노래한 단순한 시가 아니라는 것을 간단히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가실 때에는…」「…드리우리다」와 같은 말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듯이 이 시는 미래 추정형으로 쓰여져 있기 때문이다. 영문 같았으면「If」로 시작되는 가정법과  의지 미래형으로 서술되었을 문장이다. 이 시 전체의 서술어는「…드리우리다」「…뿌리우리다」「…옵소서」「…흘리오리다」로 전문에 모두 의지나 바람을 나타내는 미래의 시제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 의미로 보면 지금 님은 자기를 역겨워하지도 않으며 떠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이별은커녕 열렬히 사랑을 하고 있는 중임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 시를 한국 이별가의 전형으로 읽어온 것은 미래추정형으로 된「진달래꽃」의 시제를 무시하고 그것을 현재나 과거형으로  진술한 이별가와 동일하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고려 때의 가요「가시리」에서 시작하여「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아리랑」의 민요에 이르기까지 이별을 노래한 한국시들은 백이면 백 이별의 그 정황을 과거형이나 현재형으로 진술해왔다. 오직 김소월의「진달래꽃」만이 이별의 시제가 미래추정형으로 되어 있고 시 전체가「만약」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해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적 의미를 결정짓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다른 시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이같은 시의 시제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미래추정형의 시제를 실제 일어났던 과거형으로 바꿔서「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그대를 말없이 고이 보내 드렸었지요」로 고쳐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이미 소월의 진달래꽃과는 전혀 다른 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진달래꽃」을 이별의 노래라고 생각한다는 것은「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이라는 옛가요를 듣고 그것이 백만장자의 노래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시 음치에 속하는 일이다. 그같은 오독이「진달래꽃」을  읽는 시의 재미와 그 창조적인 의미를 얼마나 무참히 파괴해버렸는가는 췌언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오독으로 인해서「고이보내 드리 우리다」나「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와 같은 시의 역설이 한국  여인의 부덕으로 풀이되기도 하고 급기야는 이 시를 명심보감이나 양반집 내훈의 대역에 오르도록 했다. 자기를 역겹다고 버린 님을 원망은커녕 꽃까지 뿌려주겠다는 인심좋은 한국 여인의 관용이, 그리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겠다는 극기의 그 여인상이「진달래꽃」의 메시지였다면 그 시는 물론이고「진달래꽃」의 이미지조차도 우스워진다. 그렇다. 그런 메시지에 어울리는 꽃이라면 그것은 저 유교적 이념의  등록상표인「국화」요「매화」일 것이다.

「진달래꽃」은 결코 점잖은 꽃, 자기 억제의 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진 가축화한 완상용 꽃이 아니다. 오히려 겨우 내내 야산의 어느 바위틈이나 벼랑가에 숨어 있다가 봄과  함께 분출한 춘정을 주체할 바 모르는 야속(野屬)의 꽃인 것이다. 더구나 영변 약산에 피는 진달래꽃은  그 색깔이 짙기로 이름나 있다. 온 산 전체를 온통 불태우는 꽃으로, 신윤복의 그림「연소 답청」에서  보듯 남자들과 나귀 타고 산행을 하는 기녀들의 머리에 꽂았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인 것이다. 그런  진달래가 이별의 슬픔을 억제하고 너그러운 부덕을 상징하는 자리에 등장하는 꽃이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유교사회에 있어 진달래꽃은 그 흔한 화조병풍이나 화투장에서마저도 멀찌감치 물러나 앉은  반문화적 꽃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째서「진달래꽃」이 어둡고 청승맞은 4.4조의 우수율이 아니라 밝고 경쾌하며 조금은 까불까불한 느낌조차 주는 7.5조의 기수율로 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이별가의 침통한 가락이 아니다. 약간은 수줍게 그러면서도 철없이 불타오르는「진달래꽃」같은 사랑의 언어들, 때로는 장난기마저 깃든 천진난만한「소녀의 기도」소리의 율동을 들을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밤의 어둠을 바탕으로 삼지 않고서는 별빛의 영롱함을 그려낼 수 없듯이 이별의 슬픔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할 수 없는 역설로 빚어진 것이 바로 소월의「진달래꽃」인 것이다. 즉 이별의 가정을 통해 현재의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낸 시이다. 이별을 이별로써 노래하거나 사랑을 사랑으로 노래하는 평면적 의미와 달리 소월은 사랑의 시점에서 이별을 노래하는 겹시각을 통해서 언어의 복합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슬픔이라는 대립된 정서, 대립된 시간 그리고 대립된 상황을 이른바「반대의  일치」라는 역설의 시학으로 함께 묶어 놓는다. 그래서 사랑을 반기고 맞이하는 꽃이 여기에서는 반대로 이별의 객관적 상관물이 되고, 향기를 맡고 머리에 꽂는 꽃의 상부적 이미지가 돌이나 흙과 같이  바닥에 깔리거나 발에 밟히는 하부적 이미지로 바뀐다. 그러한 꽃의 이미지 때문에 가벼움을 나타내는「사뿐히」와 무거움을 나타내는「밟다」라는 서로 모순하는 어휘가 하나로 결합하여「사뿐히 즈려밟고」의 당착어법이 되기도 한다.

 소월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산에 핀 진달래거나 혹은 여인의 머리나 나무꾼의 지게에 꽂아진 진달래의 그 아름다움밖에는 모를 뻔했다. 그러나 반대의 것을 서로 결합시키는 소월의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우리는 비로소 바위 틈에서 피어나는 진달래만이 아니라 슬픈 발걸음 하나하나에서 밟히우면서 동시에  희열로 피어나는 또 다른 가상공간의 진달래꽃의 아름다움과 만난다.

 그것이 바로 이별의 슬픔을 통해서 사랑의 기쁨을 가시화하는 역설 또는 아이러니라는 시적 장치이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시의 복합적 의미는 반드시 한 항목만을 골라 동그라미를 쳐야 하는 사지선다의 객관식 답안지로는 영원히 도달될 수 없는 세계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의 마지막 구절을 눈여겨 보면 산문과는 달리 복합적 구조를 가진  시적 아이러니가 무엇인지를 알게될 것이다. 어느 평자도 지적한 적이 있지만 산문적인 의미로 볼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와「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우리다」는 조금도 뜻이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부정을 뜻하는「아니」가「눈물」앞에 오느냐 뒤에 오느냐로 시적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아니가 뒤에 올 때에는 단순히 평서문으로서 그냥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진술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가 눈물 앞에 올 때에는 그 부정의 의미가 훨씬 강력해진다. 「아니」라는 말이 의도적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강력한 부정일수록 긍정으로 들리는 시의 역설이 생겨나게 된다.

 김소월의「진달래꽃」은 한 세기 가까이 긴 세월을 두고 오독되어 온 셈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이별의 노래가 아니다. 역겨움과 떠남이 미래형으로 서술되고 있는 한「사랑」은 언제나「지금」인 것이다. 사랑을 현재형으로, 이별을 미래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소월의 특이한 시적 시제 속에서는 언제나 이별은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랑의 기쁨과 열정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구실을 한다. 그러한 모순과 역설의 이중적 정서를 가시화하면 봄마다 약산 전체를 불타오르게 하는, 그러면서도 바위틈 사이에서 하나 하나 외롭게 피어나는 진달래꽃잎이 될 것이다.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희망의 문학 약산

 평안북도 영변군 영변면에 있는 산. 높이 480m. 군청소재지인 영변은 가장 전형적인 산성취락으로, 주위가 모두 산으로 둘러싸이고 산에는 성벽을 둘러 마치 항아리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철옹성(鐵甕城)이라 불리는 요지이다.성의 서부에 있는 약산은 철옹성의 진산이며 주위의 다른 산에 비하여 가장 험준하며 경승지이다.
 약초가 많다 하여 약산이라 하였다는 설과 약수가 있어 약산이라 하였다는 두 설이 있으나, 어느 편의 이야기로 보나 산에 약초와 약수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영변이면 약산, 약산이면 영변이라고 할만큼 약산은 영변의 명물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영변부에서 서쪽으로 8리쯤 되는 곳에 있는 진산으로 사방이 높고 험하여 바위를 깎아 세운 듯한 약산이 힘 있게 연변 한 귀퉁이를 쌓고 있다고 하였다.
 약산 제일봉을 중심으로 동쪽에 기암괴석이 층층이 쌓여 있는데, 그 중에 약 5m 가량 높은 곳에 주위 20여m 정도의 반석이 마치 대와 같이 되어
약산동대(藥山東臺)라 한다.
 동대는 관서팔경의 하나로 봄에는 대의 돌 사이에 진달래를 비롯한 백화가 만발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일품이며, 동대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구룡강(九龍江)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특히, 봄에는 진달래로 산 전체가 분홍빛으로 물드는데,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이라는 시로 더욱 유명하다. 또한, 예로부터 천주사(天柱寺)·서운사(棲雲寺)·수운사(水雲寺)·수국사(守國寺)·학귀암(鶴歸庵) 등의 사찰도 많은 명산이다.참고문헌 新增東國輿地勝覽, 寧邊誌(寧邊郡民會, 1971), 平安北道誌(平安北道誌編簒委員會, 1973).(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희망의 문학 소월 시의 한(恨)과 민요와의 관계

 소월 시의 저변에 흐르는 한(恨)은 한민족의 심층에 깔린 정서이다. 이것은 고려속요나 시조에서 살펴볼 수 있거니와, 그 외에도 구전(口傳)하는 민요나 민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여러 민요를 살펴보면 소월이 그의 시에서 노래한 이별의 한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에 내포된 한의 정서는 특히 비기능요(非機能謠-노동요 같은 어떤 기능성을 띤 노래가 아닌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국 민요의 정서가 소월 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여러 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희망의 문학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희망의 문학 한용운의 '님'과 김소월의 '님'

 김소월의 '님'이 가진 속뜻을 생각하면서 같은 시대에 살았던 한용운의 '님'을 비교할 가치가 있다. 한용운의 시에도 '님' 또는 이에 해당하는 존재가 많이 등장한다. 그 님이 현재의 '나'와 함께 있지 않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성을 가지면서도 그것을 시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아주 대조적이다.

 김소월의 시에 나타나는 '님'은 죽었거나 아주 멀리 가서 돌아올 가망이 없는 님이다. 그의 시가 대개 애절한 슬픔과 한의 빛깔을 띠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랑하는 님이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나에게는 기약 없는 기다림만이 있다고 할 때 절망적인 비탄에 빠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에 비해 한용운은 비록 지금 여기에 '님'이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이며,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는 믿음을 노래한다. 님의 돌아옴을 믿기 때문에 그의 시는 끝없는 절망에만 빠지지 않으며 마침내는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슬픔과 절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돌아오고야 말 님을 향해 솟아오르는 사랑의 힘을 노래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여러 각도에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그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시인이 가졌던 현실 감각과 역사 의식에서 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문학 '진달래꽃'의 형태와 율격

 '진달래꽃'은 자유시로서 7·5조의 3음보 율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각 연이 1행 2음보, 2행 1음보, 3행 3음보로 행에 따른 호흡의 속도를 다르게 함으로써 리듬의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종결 어미 '- 우리다''의 반복을 통해 음악적 리듬감을 형성하여 음악적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1연과 4연의 형태가 같은 수미 상관의 구조를 통해 주제를 강조하고 구성의 안정감을 주고 있다.

희망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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