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매문사, 1924>

  작자 소개

본명 정식(廷湜). 평북 구성(龜城) 출생. 오산학교(五山學校) 중학부를 거쳐 배재고보(培材高普)를 졸업하고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하였으나 간토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어 《먼 후일(後日)》 《죽으면》 《허트러진 모래 동으로》 등을 《학생계(學生界)》 제1호(1920.7)에 발표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배재고보에 편입한 1922년에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닭은 꼬꾸요》 《바람의 봄》 《봄밤》 등을 《개벽(開闢)》지에 발표하였으며, 이어 같은 잡지 1922년 7월호에 떠나는 님을 진달래로 축복하는 한국 서정시의 기념비적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표하여 크게 각광받았다.

그 후에도 계속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등을 발표하였고, 이듬해인 1924년에는 《영대(靈臺)》지 3호에 인간과 자연을 같은 차원으로 보는 동양적인 사상이 깃들인 영원한 명시 《산유화(山有花)》를 비롯하여 《밭고랑》 《생(生)과 사(死)》 등을 차례로 발표하였다. 1925년에 그의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이 매문사(賣文社)에서 간행되었다.

그후 구성군(郡) 남시(南市)에서 동아일보사 지국을 경영하였으나 운영에 실패하였으며, 그 후 실의의 나날을 술로 달래는 생활을 하였다. 33세 되던 1934년 12월 23일 부인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튿날 음독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불과 5, 6년 남짓한 짧은 문단생활 동안 그는 154 편의 시와 시론(詩論) 《시혼(詩魂)》을 남겼다.

평론가 조연현(趙演鉉)은 자신의 저서에서 “그 왕성한 창작적 의욕과 그 작품의 전통적 가치를 고려해 볼 때, 1920년대에 있어서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하였다. 7 ·5조의 정형률을 많이 써서 한국의 전통적인 한(恨)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평가받으며, 짙은 향토성을 전통적인 서정으로 노래한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계속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자료 출처 :  야후 백과 사전 >

작품 세계 요약 :
1) 향토성 - 그의 시는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 등을 시화하고 있다.
2) 민요풍 - 그의 시는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 - 그의 시의 주제와 시정은 설움과 한과 같은 민족의 보편적 감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4) 상실과 좌절 - 그의 시에 나타나는 '임'은 부재하기 때문에 의식되는 애상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멀고 먼 존재이다.

  요점 정리

어조 : 이별의 정한을 감수하는 여성적 목소리
운율 : 7 .5 조의 음수율, 3음보의 민요조 율격
표현 : 1) 전통적 정서와 율격, 향토적인 제재로 민요풍 시의 한 전형을 이룸
          2) 호소하는 듯 애조를 띤, 여성적인 간절한 목소리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3) 도치, 반복, 반어, 명령법 등이 쓰였다.
          4) ' - 오리다'라는 종결 어미를 반복하였다.
심상 : 임이 가실 길에 뿌려진 약산의 진달래꽃의 이미지
주제 : 이별의 정한과 그 승화

구성 : 1연 - 체념을 통한 이별의 정한 (이별)  - 기(起)
         2연 - 떠나는 임에 대한 축도(사랑) - 승(承)
         3연 - 원망을 초극한 사랑 (희생)  - 전(轉)
         4연 - 인고의 의지로 이별의 정한 극복 - 결(結) 

어휘와 구절

역겨워 : 마음에 거슬리고 싫어
영변 : 평안북도에 있는 지명
약산 : 약산 동대를 가리키는 말. 관서 팔경의 하나로, 진달래가 곱기로 유명함.
아름 : 두 팔을 벌려 껴안은 둘레의 길이.
뿌리오리다. 꽃과 연결하여 불교의 산화(散華), 축복의 행위.
                  산화공덕(散華功德) : 부처님 앞에 꽃을 뿌려 그 공덕을 비는 일.
사뿐히 :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내디디는 모양
즈려 : '꾹 눌러'의 평안도 사투리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 : 이 시에 설정된 시적 자아의 정황은 아직 이별이 실현되기 이전이다. 그러면서도 그 이별은 이미 운명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고  있다.임의 마음을 미리 짐작하고 앞질러 이 쪽에서 이별을 간접적으로 미리 다짐한다.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이별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가지 말라고 붙잡는 것이지만, 유교적 인고의 덕을 익혀온 우리의 여인들은 체념과 희생의 자세를 취하여 가는 임을 붙들지 않았다. 하지만 표면상 체념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간절한 미련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영변에 약산/진달래꽃/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특정 지명을 내세워 향토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진달래꽃으로 서정적 자아의 마음 속에 열렬한 사랑을 표현했다.
가시는 걸음 걸음/놓인 그 꽃을/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 예로부터 귀하고 높은 이가 밟는 길에는 융단을 깔거나 꽃을 뿌려 밟고 가게 하거나 몸을 던져 엎드려 그 위를 딛고 가게 하여 사모의 정을 나타냈다. 시적 자아가 꽃을 뿌리는 것은 가시는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과 축복의 표현이다. 따라서 진달래꽃은 시적 자아의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는 분신으로 그 마음을 밟고 가는 사람은 영원토록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애이불비(哀而不悲 ) - 슬프지만 겉으로 드러내어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겠다는 것. 이 시의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것은 실은 너무 슬퍼 피눈물을 흘리고 있겠다는 것의 아이러니(반어)이다. 고조된 감정을 수미 상응의 결구법으로 승화시켰다. 반어, 도치

이해와 감상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될 때 그것을 붙잡고자 함은 누구나 가지는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간곡하게 붙잡음에도 불구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면 그런 때는 어찌할 것인가? 그런 일을 스스로 겪어 보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 있는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진달래꽃」은 하나의 시적 해답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인물은 님이 떠나실 때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노라고 한다. 제2, 3연에서는 영변의 약산에 핀 진달래꽃을 한아름 따다 길에 뿌려 놓을 터이니 그것들을 걸음마다 밟고 가시라고 한다. 그리고는 한번 더 강조하여, 님이 떠나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노라고 한다. 어차피 떠날 수밖에 없는 님이라면, 그리고 떠나는 것이 진실로 님이 바라는 일이라면 굳이 붙잡지 않겠노라는 비장한 말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의미가 전부라면 「진달래꽃」은 별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되지 못 할 것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문제는 위의 내용이 작중 인물의 진심과는 다른 반어적 표현 내지는 역설이라는 데 있다. 비록 말의 표현에서는 떠나는 님을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겠다고 하고,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말이 아니다. 진심은 그 반대이다. 그는 님이 떠날 때 도저히 그렇게 보낼 수 없을 만큼 절실한 사랑을 품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구절들은 그 깊은 의미에서는 오히려 표면의 문맥과는 반대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제2, 3연의 말들을 좀더 깊이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님이 가시는 길에 뿌리는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그 꽃처럼 붉고 아름다운 그의 사랑이기도 하다. 가시는 걸음마다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 달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깊은 사랑을 떠나는 님에게까지도 아끼지 않으려는 정성의 표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차마 그 아름다운 사랑을 밟으며 떠날 님에의 원망과 한이 서리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애절한 사랑과 슬픔 그리고 한을 나지막한 호소의 말씨에 실어 노래한 데에 「진달래꽃」의 간절한 뜻이 나타난다. 그것은 흔히 말하듯 고려 가요의 「가시리」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가시리」의 작중 인물이 님에게 `가시는 듯 돌아오십시오'라고 말하는 기다림의 여유가 있었던 데 비해 이 작품은 그만한 기다림도 가질 수 없는 절망적인 분위기와 슬픔을 띠고 있다. [해설: 김흥규]

< 떠나가는 임에 대한 산화 공덕(散花功德)의 한국적 여성상의 미덕과 민중적 여인의 정한을 표현하였다. 고려 속요의 가시리에 보이는 별리(別離)의 정한과 여성 취향은 한국 시가의 전통적인 맥락으로 황진이의 시조 세계와도 관련이 있다.
향토적인 언어의 선택과 3음보의 민요적 가락으로 압축된 정서를 드러내고 있으면서, 적절한 언어의 반복, 아름다운 율조의 사용을 통한 부드러운 정조로 한국인의 정감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1연의 표현을 4연에서 반복함으로써 시적 자아의 감정을 점층적으로 고조시켜 수미상응식으로 결구를 맺고 있다.
또,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는 반어적인 표현은, 시인의 감정이 절제되어 나타나 전통적인 시가의 함축미를 느끼게 한다. >

 참고 자료

'진달래꽃'의 율격 7 . 5 조를 기조로 한 3음보의 정형적 율격을 시사의 전개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정형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이 시의 율격은 시조 같은 정형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선험적(先驗的)으로 규정된 율격 질서에 내용을 그대로 짜맞춘 것이 아니라, 시의 내용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고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율격이기 때문이다.

7 . 5 조는 흔히 일본 시가의 율격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율격이 우리 시에 쉽게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7 .5 조의 율격이 3. 4. 5 혹은 3. 4. 2. 3(4. 3. 3. 2) 등으로 분해됨으로써 우리 전통 시가의 율격과 친화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속요  '가시리', '서경별곡'과 '진달래꽃'에서의 시적 자아의 태도 비교
진달래꽃과 고려 속요인 가시리, 서경별곡은 이별의 정한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하지만 서경별곡의 화자는 가는 임에 대해 하소연, 다짐, 원망, 그리고 질투심까지 나타내지만 가시리, 진달래꽃의 화자는 임을 고이 보내 드린다는 점에서 일단 구별된다. 또한 가시리는 임이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언제까지나 이별의 슬픔을 인내하겠다는 진달래꽃의 화자와 태도상의 차이를 보인다.

진달래꽃의 전통시와의 접맥
진달래꽃은 먼저 산화공덕(散花功德)을 노래한 점에서 향가의 도솔가에 , 그리고 이별의 정한(情恨)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 속요의 가시리와 조선 시대의 황진이의 시조 등에 접맥되어 있다.

              향가                         고려 속요                        시조                       자유시

            도솔가                          가시리                    황진이의 시조              진달래꽃

가시리  자료로 가기
서경별곡 자료로 가기

김소월 시의 '이별'과 만해 시의 '이별' 김소월의 시와 만해의 시는 공통적으로 '임' 과의 '이별' 을 가장 중요한 시의 모티프로 삼고 있다. 그러한 두 시인에게 '이별'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김소월에게서 '임'과의 '이별'이 지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김소월에게서 '임'과의 '이별'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것으로, 그 이별의 상태가 극복될 가능성은 거의 주어 지지 않는다. '초혼(招魂)' 같은 시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김소월에게 있어서 '임'은 항상 과거의 존재, '나' 와 근원적으로 합일될 수 없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만해 에게 있어서 이별'은 다른 의미로 나타난다. 그에게 있어서 '이별' 은 외부에 있어서 강요된 것이라기 보다는  새롭고 높은 차원의 '임'과 만나기 의해서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 의미에서 만해의'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방법적 계기로서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별' 속에는 '임'과의 만남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김소월의 시에서는 억누를 길 없는 비애와 절망을 안으로 삭이는 한의 정서가 강조되는 반면, 만해의 시에서는 이별로 인한 비애와 슬픔이 새로운 만남의 대한 기대와 예견의 의해 극복되어 가는 모습이 강조된다.

김소월의 시사적(詩史的) 위치

 김소월의 시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민요적 율격에 밀착되어 있다. 표면에 그리움, 슬픔, 한(恨) 등 비극적 사랑의 정감이 있으면서도 이면에는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그 심층에는 험난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고자 하는 초극(超克)의 정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 참뜻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도 소월 시는 서구 편향성의 초기 시단 형성 과정에 있어서 한국적인 정감과 가락의 원형질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민족시, 민중시의 소중한 전범(典範)이 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향토성(鄕土性) : 그의 시는 거의가 향토적인 풍물, 자연, 지명을 소재로 삼고 있다.

 (2) 민요풍(民謠風) : 오랜 세월 동안 겨레의 정서 생활의 가락이 되어 온 민요조의 리듬으로 이루어졌다.

 (3) 민족 정서(民族 情緖) : 시의 주제와 심상은 민족의 설움과 한(恨)의 정서를 활용, 민족의 보편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월 시의 한(恨)과 민요와의 관계

 소월 시의 저변에 흐르는 한(恨)은 한민족의 심층에 깔린 정서이다. 이것은 고려속요나 시조에서 살펴볼 수 있거니와, 그 외에도 구전(口傳)하는 민요나 민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여러 민요를 살펴보면 소월이 그의 시에서 노래한 이별의 한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에 내포된 한의 정서는 특히 비기능요(非機能謠-노동요 같은 어떤 기능성을 띤 노래가 아닌 민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한국 민요의 정서가 소월 시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점은 여러 평가들에 의해 지적된 바 있다.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