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뚝  


작자소개

        박완서 (1931년 -   )

      경기도 개풍에서 출생하여, 서울대 국문과를 중퇴했다.

      1970년 장편 <나목>이 '여성동아' 현상 모집에 당선됨으로써 등단한 이후, 지속적이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세모>(1970), <어떤 나들이>(1971), <지렁이 울음 소리>(1973), <부처님 근처>(1973),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4), <카메라와 워커>(1975), <도둑맞은 가난>(1975), <조그만 체험기>(1976), <꿈을 찍는 사진사>(1977), <공항에서 만난 사람>(1978), <우리들의 부자>(1979), <그 가을 사흘 동안>(1980), <엄마의 말뚝>(1980), <천변 풍경>(1981) 등의 중단편들이 있다. 장편 소설로는 데뷔작 <나목>(1970)을 위시하여 <도시의 흉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황혼>(1979), <오만과 몽상>(1982),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등이 있다.

      박완서의 소설은 두 개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가 일상과 인간 관계에 대한 중년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현실적인 감각이라면, 다른 하나는 6.25에 의해 초래된 비극적 사건의 기억이다. 이 중 박완서 문학의 본령이라 할 만한 것은 두 번째 것인데, 이는 그의 처녀작 <나목>에도 희미하게나마 투영되어 있으며, <세모> <부처님의 근처>와 <카메라와 워커>를 거쳐 <엄마의 말뚝>에서 그 전모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소설 속에서 이러한 기억의 절실성은 천의무봉이라 할 만한 그의 문체와 결합되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 비극적 현실을 그려낸다.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의 삶으로 돌아 왔을 때, 거기에는 정치한 심리 묘사와 능청스러운 익살, 지나가 버린 삶에 대한 애착, 핏줄에 대한 절절한 애정과 일상에 대한 안정된 감각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박완서의 소설은 한국 문학의 성숙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는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했으며, 1981년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도시의 흉년>(1977), <배반의 여름(1978) <도둑맞은 가난>(1982) 등을 위시한 다수의 소설집과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6) 등의 수필집을 상재한 바 있다.

 

요점정리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 6 25 전쟁. 서울.
      주제 : 6 25의 비극과 분단 고통의 극복 의지.
      인물 : 나 - 주인공. 5남매의 어머니. 평범한 가정주부. 전쟁으로 오빠를 잃고 분단의
                     아픔에 사 로잡혀 있음.
               친정 어머니 - '나'의 어머니.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한을 지닌 인물.

 

이해와 감상

        <엄마의 말뚝>은 중편소설로 1980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작(連作) 소설이다.

      6 25로 인해 이산된 한 가족이 겪은 전쟁 당시의 상황과 현대의 서울을 병치시켜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 속에는 박완서의 작가 의식이 큰 줄기를 차지하는 분단의 극복 의지가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서 분출되고 있다. 분단의 비극이 아직도 우리의 삶 속에서 꺼지지 않은 불씨로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점을 작가는 한 어머니의 정신 착란의 외피 속에서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몸소 분단의 희생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절실하게 와 닿게 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과 민족의 관계가 오직 가족사 속에서 깊이 파악됨으로써 추상적이기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분단 문제가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눈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능력이 남다른 경지임을 보여 준 것이다.

 

줄거리

        5남매의 어머니인 '나'는 "나만 없어 봐라. 집안 꼴이 뭐가 되나?" 하는 식의 안주인이다. 이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상사들이 하나같이 '나'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자라고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집안에서 일어날 사고의 인자들이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타성화된 섬뜩함에서 차츰 벗어나게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농장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나'가 여지껏 경험한 섬뜩함 중에서도 최악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친정 어머니가 폭설로 미끄러운 빙판 길에서 넘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다.

      병원에 입원한 친정 어머니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했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병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비정상적인 강단과 근력을 보이다가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어머니는 그 착란 증세 속에서,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 실어증에 걸린 데다 유혈이 낭자한 채 비극적으로 죽어간, 한 맺힌 일들을 다시금 되살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곱게 늙으신 외모와는 달리 가슴 속 깊이 원한과 저주를 묻고 살아온 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빠의 비극적 생애 때문이었다.

      6 25 전 오빠는 한때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적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오빠는 적 치하의 서울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었다. 오빠는 전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도덕적 열패감에 괴로워했다. 또한 그는 수도를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가 버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 고독 등으로 몸부림쳤다.

      오빠는 이웃의 고발로 끌려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인민 궐기 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에 지원하였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나는 혜택을 누렸었다. 그러나 석 달만에 세상이 바뀌자, 우리 집은 빨갱이 집으로 지목되었고 그리하여 이웃의 극심한 박해가 뒤따랐다.

      1 4 후퇴로 인해 오빠는 다시 돌아왔다. 피난이 어렵게 되자, 어머니는 서울에 와서 처음 말뚝 박은 산비탈 달동네로 피난했다. 그러나 은신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인민군이 들이닥쳤다. 오빠는 인민군의 출현으로 실어증까지 보였다. 인민군은 오빠의 신분을 캐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어머니는 오빠의 행동을 선천적인 정신 불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민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오빠는 정말로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오빠는 다시 후퇴하는 인민군 보위 군관에게 총상을 당한 뒤, 실어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유혈을 낭자하게 흘리며 죽었다. 어머니는 오빠의 시신을 화장하여 이북 고향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것은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6 25의 비극과 분단에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아직도 투병중인 어머니는 오빠의 화장과 똑같은 방법의 사후 처리를 '나'에게 부탁했다.

 

심화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