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로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그대가 흘린 땀의 피,

노동의 땀,

노예 생활의 노동,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아프리카, 말해 보라, 아프리카

이것이 당신인가, 휘어진 이 등이

찌는 듯한 길바닥에서 채찍마다 예예 굽실대는

붉은 상처들로 떨고 있는 얼룩무늬의 이 등이 ?

그대 묵직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 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

창백하게 시든 꽃들 가운데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요점 정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작자 : 다비드 디오프(David Diop) / 조한경 옮김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율격 : 내재율(반복과 대구를 통한 리듬의 창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성격 : 현실 참여적. 저항적. 사회 고발적. 적극적. 의지적, 열정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어조 : 울분의 토로와 차분함이 대화적으로 드러나는 어조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상 : 시각적. 비유적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구성 :

   [서두] 1 - 3행   아프리카의 당당했던 먼 과거

   [중간] 4 - 14행  아프리카의 처참한 현재

   [결말] 15 - 23행 아프리카의 밝은 미래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제재 : 식민지 아프리카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주제 : 식민지 아프리카의 참상 고발과 미래에 대한 염원, 고통의 현실 속에서 아프리카의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굳센 의지. 과거 아프리카의 고통과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의의 : 식민지의 역사로 점철된 아프리카의 현실을 형상화하였다.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출전 : 연타(連打)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내용 연구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내 얼굴은 그대의 피로 가득하다. : 아프리카 사람이지만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대대로 물려 받은 대초원에서 -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 식민주의가 침투하기 이전에는 아프리카가 당당하면서도 평화로운 곳이었으며 인간적인 존엄성이 지켜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들판을 적시는 ∼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 아프리카 인의 혼이 검은 대륙의 땅에 점점이 배어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하여 그 땅들이 노예 생활의 피로 물들여 있고 그것이 대대손손 유산으로 물려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것이 당신인가, 휘어진 - 얼룩무늬의 이 등이? :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이 시작된 지 3백 년 이래 식민지의 악랄한 착취와 억압에 찌든 아프리카의 참혹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제국주의의 제물이 되어 왔던 아프리카의 참혹한 실상을 채찍에 시달리는 노예들을 통해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다. 시적 화자의 울분을 의문문의 어조로써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휘어진 등'은 아프리카 인들의 착취, 고통 등을 의미하는 대유적 표현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그대 묵직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 앞에 제시된 시적 화자의 울분이 보다 희망에 찬 기운으로 승화될 것임을, 달리 말해서 아프리카 현재의 참혹한 실상이 미래에는 반드시 극복될 것임을 강하게 믿고 있는 시적 화자의 의지를 보다 큰 존재(아프리카)의 목소리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대'의 목소리는 주제와 분위기의 반전을 꾀하는 일종의 시적 장치이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창백하게 시든 꽃들/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 식민지를 경애해 온 서구 제국 주의의 문명을 오히려 창백하게 시든 꽃으로 인식하고 지금 외롭게 고통을 겪고 있는 아프리카를 그 꽃들 가운데 의연히 서 있는 존재로 형상화하였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 아프리카의 미래에 대한 시적 화자의 희망적인 전망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를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젊고 튼튼한 나무'에 비유하면서 시적 화자는 미래에 커다란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아프리카라는 신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싱싱한 나무와 새싹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제시된 시각적, 미각적 이미지가 강렬하게 느껴진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이해와 감상

 백인들의 아프리카 식민 정책은 흑인들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 일으켰고, 그것이 아프리카 흑인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었다. 곧 서구 문화에 물들지 않은 전통적 토속 생활에 대한 관심과 모국인 아프리카에 대한 자부심 등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다비드 디오프의 "아프리카"는 서두 부분에서 과거의 당당했던 아프리카의 모습을, 중간 부분에서 노예 생활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결말 부분에서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선다'는 자유의 열매를 맺을 아프리카의 미래를 확신에 찬 어조로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흑인 문화의 자부심을 알리고자 하는 네그리튀드 운동의 일환으로 씌어진 작품이다. 그러기에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비극적인 데 머물지 않고 희망적인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밝은 이미지와 장엄한 어조는 시적 화자가 현재 아프리카의 비극적 실상이 꼭 극복될 것임을 강하게 확신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감상 2

 시인의 아프리카 현실에 대한 인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심혼을 울리는 열정적인 목소리를 지닌다. 첫 행의 아프리카에 대한 부름은 시인이 간직한 사랑의 직접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과 뗄 수 없는 일체가 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인의 목소리에는 절절함이 배어 있다. 이러한 열정적인 목소리 속에서 시인은 아프리카의 역사를 생각한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무사들이 줄달음을 쳤던 아프리카, 할머니다 강둑에 앉아 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노래했던 아프리카, 그래서 시인의 핏줄과 영혼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가 이제 검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의 전환은 들판을 적시는 강물이 검은 피로 인식되고 그 검은 피는 아프리카 인들이 흘리고 있는 피라고 자연스럽게 인식되어 이어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식민의 억압 속에서 착취되고 고통당했던 아프리카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된다. 그 식민지의 착취의 결과가 등이 굽은 아프리카의 현실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참혹한 현실에 좌절하고 있지마는 않다. 채찍 아래에서 굽은 등을 지닌 아프리카, 핏물로 얼룩진 아프리카가 저 유럽의 넓은 문명의 시든 꽃과 대비되는 새로운 생명을 지닌 젊고 튼튼한 나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시인은 아프리카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외로운 존재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의 끈을 끊고 끈질기게 일어설 존재이며, 그렇게 일어서는 가운데 자유의 참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 열매 속에 자유를 알알이 채워 나갈 나무라는 확신으로 끝을 맺고 있다. 자기가 살아온 땅에 대한 사랑에 기반하여 그 땅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그 역사에서 일어설 미래를 밝고 힘찬 목소리로 노래한 작품이다.

감상3

 시인의 아프리카 현실에 대한 이해는 비극적이다. 대대로 물려 받은 들판에서 당당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던 아프리카 인들이 굴욕에서 비겁과 아부와 공포와 굶주림 속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패배적으로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끈기 있고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젊고 튼튼한 나무의 이미지로 표상되는 것이 바로 아프리카인 것이다. 이 시는 자유가 단지 화려한 것만이 아니고 쓰라린 맛과 함께 있다는 현실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지혜를 드러내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우리 민족의 현실을 노래한 시와 비교하며 감상해 보자. (출처 : 우한용 외 3인 저 문학교과서)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심화 자료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디오프(David Diop)

 1927. 7. 9 프랑스 보르도~1960경 세네갈 다카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시인. 그는 1950년대의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젊은 시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한 비극적 죽음은 그의 유망한 생애를 갑자기 중단시키고 말았다.

 

 그의 작품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시집은 〈절구질 Coups de pilon〉(1956)로, 유럽인들이 지니고 있는 문화적 가치관에 대해 반대한 성난 시들이 들어 있다. 여기에는 노예매매가 성행했던 시대와 식민지 통치시대의 지배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열거했고, 아프리카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혁명이 필요함을 주창하고 있다. 그가 네그리튜드 작가들(프랑스의 동화 정책을 기초로 한, '아프리카는 문화도 역사도 가지지 못한 혜택받지 못한 나라'라는 억지 주장에 대항해 반발하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급진적인 작가라는 사시을 아프리카 전역에 걸친 식민지 경험이 아프리카에 유익을 가져다 준 것이 전혀 없으며,문화와 경제부흥보다 정치적 자유가 우선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할 당시에 그의 작품세계의 절정을 이루는 많은 작품을 썼다. 그는 그 자신 프랑스에서 성장했으면서도 유럽 사회에 대해 강한 반발과 반대의견을 지니고 있었으며, 세네갈·기니아·카메룬 들지를 방문하고 난 뒤 이러한 견해는 더 강해졌다. 마르티니크의 시인 아이메 세새르가 잡지 〈프레장스 아프리캥 Presence Africaine〉에 최초로 발표한 서사시와 레오폴드 생고르의 〈Anthologie de la nouvelle poesie negre et malgache〉에서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아프리카의 현실과 문학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은 독립이 되었지만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정치적, 경제적인 자립 능력을 갖추지 못해 서방 선진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혼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빈곤, 기아, 질병, 강제 노동, 문맹(文盲), 빈민층의 소외 등등의 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아프리카 국가들이 당면한 현실적 과제는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 식민지적 구태를 벗어 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성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사명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아프리카 문학은 아프리카 민족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신들의 민요를 복원해 내는 작업, 지나간 역사에 있어서 서방 제국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저지른 과오를 고발하는 작업, 검은 피부에 대한 자부심의 고양 등에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프리카'와 유사한 작품

지평선을 향하여

 

그날이 오면 우리의 비둘기를 다시 찾으리라.

그리하여 다정하게 아름다운 여신의 손을 잡으리라.

그날이 오면 가장 짧은 노래는 키스와 같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과

형체가 되리라.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자기 집의 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자물쇠는

먼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리라.

사람의 가슴마다에는

인생의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 날이 오면

모든 이야기를

마지막 말까지 들을 필요가 없으리라.

 

그 날이 오면 모든 말의 리듬은

인생으로 충만해

나 또한 운을 맞추어

나의 마지막 시를 쓰려고 할 까닭이 없으리라.

그 날이 오면 모든 입술은

노래가 되고

가장 짧은 노래는

키스가 되리라.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기로 되었다면

영원히 와서 임하거라.

 

그리하여 친절함이

아름다움과

하나를 이루리라.

 

그 날이 오면 다시

우리는 곡식 낟알을 흩뿌려

우리의 비둘기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비록 그 날이 올 적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이해와 감상

 

 아마드 샤물루의 작품인 '지평선을 향하여'는 '그 날이 오면'이라는 구절을 반복하여 시적 화자가 찾고자 하는 꿈과 이상이 실천되어지는 날을 애타게 그리고 있는 중동 지역의 시로 주제는 현실의 모순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적 바람을 노래하고 있다.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맬컴 엑스(Malcolm X)

본명은 Malcolm Little (El-Hajj Malik El-Shabazz).

1925. 5. 19 미국 네브래스카 오마하~1965. 2. 21 뉴욕 시로 1960년대초 흑인의 자부심과 블랙내셔널리즘을 주장한 흑인 민권운동지도자로 암살된 다음 〈맬컴 엑스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Malcolm X〉(1965)이 널리 읽혀지면서 특히 흑인 청년들 사이에서 사상적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미시간 주 랜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맬컴은 자기 집이 백인지상주의 단체인 'KKK단'(Ku Klux Klan)의 손에 불타버리는 사건을 당했다. 후 2년 뒤 아버지가 살해되었고, 어머니마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맬컴은 그 뒤 몇 년 동안을 소년원에서 보냈고 10대 초반에는 보스턴에 있는 누나의 집에서 기거했다. 1946년 강도죄로 복역하는 동안 블랙 무슬림 신앙으로 개종했다. 이 교파는 흑인들의 우월성과 백인들의 타고난 사악함을 공언했다. 1952년 감옥에서 풀려나자 시카고에 있는 블랙 무슬림 운동의 본부로 가서 이 교파의 지도자 엘리자 무하마드를 만나 블랙 무슬림의 엄격한 금욕주의를 지킬 것을 맹세했다. 맬컴은 성을 '엑스'(X)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자신들의 성이 백인노예주들이 지어준 것이라고 여기던 이슬람 국가 신봉자들 사이에서 행해지던 하나의 관습이었다.

 

맬컴은 미국 전역에 순회강연 여행을 떠났으며 곧 블랙 무슬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연사이자 조직가가 되었다. 또 수많은 모스크를 새로 세우고 블랙 무슬림 운동의 참여자를 크게 늘렸다. 1961년 그는 이 운동의 공식 간행물인 〈무하마드 스피크스 Muhammad Speaks〉를 창간했다. 그는 마침내 뉴욕 시의 할렘 지구에 있는 제7 모스크의 책임자가 되었다. 백인들의 흑인 착취에 반대하는 통렬한 웅변과 화려한 연설 솜씨로 맬컴은 곧 수많은 헌신적인 지지자들을 얻었다. 그는 시민권운동을 비웃고 흑백통합주의와 흑백평등주의 모두를 거부하는 대신 흑인분리주의, 흑인의 우월성, 흑인의 자립을 요구했다. 그는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사용을 옹호했고 광신자같이 보였기 때문에, 인종적 불평등에 대해 비폭력저항을 강조한 대부분의 민권운동지도자들의 배척을 받았다.

 

맬컴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사건(1963. 11. 22)을 자업자득, 곧 백인들이 오랫동안 흑인들에게 사용해온 폭력에 대한 징벌로 묘사했다. 이무렵 맬컴의 성공으로 블랙 무슬림 운동 내에 시기심이 높아졌고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에 관한 맬컴의 언급이 물의를 일으키자 무하마드는 그를 블랙 무슬림 운동에서 잠시 손을 떼게 했다. 1964년 3월 그는 이슬람 국가운동을 떠나 자신의 종교단체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온 뒤 흑인분리주의에 대한 견해를 수정하여 백인들이 사악하게 태어났다는 생각을 버린다고 선언하고 세계 형제애가 가능하리라고 전망했다. 1964년 10월 정통 이슬람교로 다시 개종했다. 맬컴의 지지자들과 블랙 무슬림 지지자들 사이에 적대감이 날로 커져 폭력사태가 빈발했기 때문에 맬컴의 생명도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는 할렘 지구의 한 무도장에서 열린 지지자 집회에서 암살되었다. 3명의 블랙 무슬림 지지자들이 살인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맬컴 엑스 자서전〉은 맬컴이 죽기 직전 그와 많은 면담을 가진 알렉스 헤일리가 쓴 책으로 출간 즉시 미국 흑인 자서전의 고전이 되었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이완근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 아프리카 문학(, ── 文學, African literature)

아프리카 대륙에서 씌어진 문학작품의 총체.

 

크게 전통적인 구전문학(口傳文學), 즉 비문자문학(非文字文學)과 문자문학으로 나누어진다. 구전문학은 시 또는 서사 형식으로 전해지는 신화·찬가·서사시·민담·수수께끼 ·속담·주문 등을 말하는데,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시는 음악, 특히 리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민족주의와 고등교육으로 자신들의 문화적 유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많은 아프리카 작가 및 학자들은 그들의 민간전승 발굴과 보존에 앞장서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아모스 투투올라의 〈저승에 간 야자술 술고래와 그의 죽은 야자술 바텐더 The Palm-Wine Drinkard and His Dead Palm-Wine Tapster in the Deads' Town〉(1952) 등은 뛰어난 상상력을 가미하여 요루바족 민간전승을 재창조해낸 업적으로 꼽힌다. 문자문학은 지중해 문화권에 속하며, 이슬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아랍 문화권과 서아프리카 연안지역 및 남아프리카의 그리스도교 문화권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특히 현대 아프리카 문학은 대부분 19세기 중엽부터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정책에 따라 형성된 그리스도교 문화권에 속하며, 식민 종주국에 따라 프랑스어권·포르투갈어권·영어권으로 다시 나뉜다.

 

유럽 언어로 쓴 현대문학

 

아프리카어로 쓴 문학은 유럽어로 쓴 문학보다 오래 전에 시작되었을지 모르지만, 유럽어로 쓴 문학이 널리 확산된 후에야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어로 쓴 현대 아프리카 문학은 아프리카 문학 전통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더러 그 자체로도 충분한 연구가치가 있다.

 

프랑스어권

 

첫 단계의 현대문학은 1930년대 파리에서 세네갈의 레오폴 상고르, 프랑스령 카리브 해 출신의 에메 세세르, 레온 다마스 등을 주축으로 전개된 프랑스의 통치와 동화정책을 거부하고 아프리카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이른바 네그리튀드 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또다른 세네갈의 시인인 비라고 디오프, 다비드 디오프, 소설가인 카메룬의 작가 몽고 베티(본명은 알렉상드르 비이디)와 페르디낭 오요노 등이 이 사상에 동참하는 작품을 썼다. 그러나 1950년대 독립이 가까워오자 네그리튀드 사상과의 연계가 느슨해지면서 보다 다양한 작품이 등장했는데, 이 제2세대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아프리카 작가로는 콩고의 시인 치카야 우 탐시를 비롯하여, 아프리카에서 나온 소설 가운데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왕의 광휘 Le Regard du roi〉(1954)를 쓴 기니의 작가 카마라 라예,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고전적 소설 〈신의 작은 숲 Les Bouts de bois de Dieu〉(1960)을 쓴 사회주의 계열의 세네갈 작가 상벤 우스만 등이 있다. 그밖에 세이크 하미두 카네, 얌보 울로귀앵 같은 이슬람 지역의 서부 수단 작가들은 1960년대 철학소설의 발전에 큰 몫을 했으며, 세네갈의 마리아마 바, 아미나타 소우 팔 등의 여성작가들이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마리아마 바는 〈너무 긴 편지 Une Si Longue Lettre〉(1980)로 첫 노마 문학상을 수상했다.

 

포르투갈어권

 

전(前)포르투갈령 아프리카에서 나온 20세기 시는 전투적인 성격이 강하다. 앙골라의 시인 마리우 데 안드라데와 아구스티뉴 네토는 앙골라 해방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모잠비크 작가 주세 크라베이리냐는 인종차별에 깊은 분노를 표시했다. 모잠비크는 탁월한 문학·예술 활동가인 마푸토(로렌소 마르케스)나 루이스 베르나르도 혼와나 같은 뛰어난 단편작가를 배출했고, 특히 1980년 앙골라에서는 페페텔라(아르투르 카를루스 마우리치우 페스타나 도스 산토스)라는 발군의 작가가 출현하여 게릴라 경험을 바탕으로 〈마욤베 Mayombe〉를 써냈다.

 

영어권

 

영어로 쓴 글은 18세기부터 나타났으며, 19세기에는 그리스도교의 선교활동과 관계되는 작품들이 주종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작가들은 처음으로 구전문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1940년대에는 오니차 시장문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1948년 아크라와 이바단에 대학이 설립됨으로써 1950, 1960년대의 새로운 세대의 기초가 세워졌다. 이때 시프리안 에크웬시, 오누오라 은제콰우, 은켐 은완콰오 같은 나이지리아 이보족 작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뛰어난 이보족 소설가는 신생 아프리카의 갈등을 그린 치누아 아체베였다. 나이지리아 문학 발전에 큰 몫을 한 것은 〈프레장스 아프리켄 Presence Africaine〉의 영향을 받아 1957년 창간된 잡지 〈블랙 오르페우스 Black Orpheus〉와 1961년 발족된 '음바리 클럽'이었다. 음바리 클럽은 크리스토퍼 오킥보와 존 페퍼 클라크 같은 주목할 만한 시인을 배출했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가브리엘 오카라는 매혹적인 언어 실험소설 〈목소리 The Voice〉(1964)를 쓰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가장 유명한 극작가 올레 소잉카 역시 나이지리아 출신이며, 희곡 외에도 소설·시를 통해 인류가 진보하는 데 겪는 어려움과 치러야 하는 대가의 비극적 의미를 탐색했다. 1970년대는 도시문제라든가 여성문제 등 전 세대의 작가들과는 조금 다른 관심을 가진 신세대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부치 에메체타, 페스투스 이야이, 벤 오크리, 그리고 극작가 줄루 소폴라 등을 들 수 있다.

 

나이지리아 작가들 이외에도 1960년대 후반 감비아의 렌리에 피터스, 가나의 조지 아우노르 윌리엄스 (나중에는 코피 아우노르로 알려짐) 같은 중요한 시인이 나왔다. 1968년 가나의 아위 쿠웨이 아르마는 독립 축하의 북소리가 잦아든 후의 많은 아프리카 작가들의 실망을 그린 소설 〈아름다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The Beautiful Ones Are Not Yet Born〉를 출판했다. 동아프리카에서는 1960년대에야 문자문학이 태어나기 시작했고, 우간다의 캄팔라에서 발행된 문학지 〈트랜지션 Transition〉(1961~68)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독창적인 재능을 보인 시인은 우간다의 오코트 프비텍이며, 그의 장시 〈라위노의 노래 Song of Lawino〉(1966)는 신선한 상상력으로 문화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한편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고는 키쿠유족에 대한 소설들 〈울지마라 아이야 Weep Not, Child〉(1964)·〈강 사이 The River Between〉(1965)로 이미 동아프리카의 주도적인 작가가 되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아프리카인 및 유색인 작가들의 글은 정치성이 짙으며, 많은 작가가 단편소설을 통해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하는 글을 썼다. 그가운데 블로크 모디사네, 토드 마치키자, 에제키엘 음파렐레, 리처드 리브, 알렉스 라 구마, 칸 템바, 아서 마이마네가 성공적인 작가였다. 이들 작가들의 중요한 발표지는 1950년대 후반의 〈드럼 Drum〉이었다. 남아프리카 흑인작가들은 아주 감동적이고 중요한 자서전들을 발표했는데, 특히 음파렐레의 〈2번가 아래로 Down Second Avenue〉(1959)는 남아프리카의 고전이 되었다. 1960년대의 주도적인 남아프리카 시인으로는 마지시 쿠네네, K. A. 노르트예, 데니스 부르투스 등을 들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망명생활을 했지만 대륙에서도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뛰어난 흑인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1980년대의 우수한 작가로는 소설가 니야불로 은데벨레, 음부렐로 음자마네, 시인 시포 세팜라, 오스월드 음찰리, 몽가네 세로테, 극작가 마이셰 마포니야가 있다. 1980년대는 짐바브웨·말라위·보츠와나·소말리아에서도 뛰어난 시인과 소설가가 출현했는데, 특히 보츠와나의 베시에 헤드와 소말리아의 누루딘 파라는 아프리카 여성을 가장 깊게 해석해낸 작가일 것이다.

 

아프리카어로 쓴 문학

 

아프리카 토착어로 쓴 문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근대의 소산이다. 문자로 쓴 가장 오래된 아프리카 언어는 에티오피아의 게이즈어이며, 라틴 및 아랍 문자의 도입이 아프리카 문자문학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아랍 문자는 7세기에 소개되었으나 라틴 문자는 대부분 19세기에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아프리카 토착어 문학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큰 발전을 했지만, 대부분 아프리카 지식인들은 유럽어를 더 선호했다. 응구기 와 시옹고 같은 작가가 토착어로 작품을 쓰며 유럽어가 주종을 이루는 문학계에 도전장을 던진 1970년대 이후에야 진정한 아프리카어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는 소말리아에서처럼 정부시책도 한몫을 했다. 아프리카어 문학의 주요주제는 전통문화와 근대 사이의 갈등이며, 정치적·사회적 주제도 예리하게 취급된다. 국가문제라든가 아프리카 통합 및 인종주의에 관해 아프리카어 문학이 갖는 논평의 역할은 유럽어 문학과 마찬가지로 높이 발전되었고 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아프리카

 

요루바어로 씌어진 작품은 주로 나이지리아와 베냉에 거주하는 요루바족의 풍부한 구전문학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첫 요루바어 시집은 J. 소보우올레 소완데의 〈소보의 첫 책 Iwe Ekini Sobo〉(1905)인데, 소설은 1938년에야 나왔다. 널리 인기를 얻은 소설로는 다니엘 올로룬페미 파군와의 비유적인 소설 〈1,000명의 도깨비가 사는 숲 Ogboju Ode Ninu Igbo Irunmale〉(1950)이 있다. 1960년 나이지리아가 독립하면서 문학대회가 열렸는데, 그 수상자 페미 제보다를 비롯하여 아폴라비 올라빔탄, 아킨운미 이솔라 등이 성공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하우사 지방(북부 나이지리아와 나이저 강 유역)에는 15세기말부터 아랍어의 전통이 수립되어 있었다. 하우사어는 19세기초부터 아랍 문자로, 20세기초부터 로마 문자로 기록되었으며, 이슬람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종교문학이 발달했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은 알하지 우마루이고, 비종교적 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번창하게 되었다. 〈귀향병들을 환영하는 노래 Wakar maraba da soja〉(1957)로 제일 유명한 시인이자 정치가인 사아두 중구르를 비롯하여, 시로써 당대생활을 논평하는 전통을 수립한 무디 시피킨, 하미사 야두두 푼투와 등이 뛰어난 시인이다. 그밖에 가르바 그완두, 아킬루 알리유 등 많은 70년대 시인들은 정치적 관심을 노래했다. 하우사어 소설은 시보다 최근의 소산이며, 1933년 제1차 문학경연대회의 결과로 출판되기 시작했다. 파군와의 소설처럼 과거와 전통적 생활에 대한 관심이 강하며, 구전문학의 환상적 형상과 비유적 요소들을 많이 이용했다. 술라이만 이브라힘 카치나는 〈투르민 다냐 Turmin Danya〉(1983)에서 정치적 부패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밖에 과학소설·여행기·전기 등이 하우사어로 나왔다.

 

동아프리카

 

가장 오래된 문어는 고대 아랍어와 관계되는 게이즈어로서, 19세기까지 에티오피아의 문어였으며, 4세기 그리스도교와 관계된 글에 처음 쓰였다. 에티오피아의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씌어진 현대문학의 창시자는 사회구습과 수상쩍은 종교활동을 비판한 블라텐게타 히루이 왈다 실라세이며,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창시자 아파와르크 가브라 이야수스는 에티오피아의 첫 소설인 〈환상적인 이야기 Libb Wallad Trk〉(1908)를 썼다. 1936년 이탈리아의 점령으로 현대문학의 비판적 추진력에 손상을 받았지만, 기르마카우 타클라 하와리야트, 아베 구반냐, 비르하누 자리훈, 타다사 리반, 인나누 아고나피르, 하디스 알라마야후, 망기스투 람마 등이 비판의 전통을 이어갔다.

 

아랍어로 쓴 종교시 이외에도 소말리아는 소말리어로 된 매우 오래되고 풍부한 구전문학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소말리어 문자문학이 실제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이고, 1973년 이후에야 활발한 발전을 이루었다. 첫 시인은 칼리 쿠센 키르시이며, 흔히 공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산문에서는 파락스 M.I. 카울을 시발점으로하여 구전형식에서 문자형식으로 바뀌었으며, 그의 교훈적인 소설 〈무지는 사랑의 적 Aqoondarro waa u nacab jacayl〉(1974)은 영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아랍어·페르시아어·우르두어 등 이슬람 문학에서 자극받은 스와힐리어로 씌어진 시는 적어도 17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엽까지 아랍 문자가 사용되었지만 이후에는 라틴 문자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표준이 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는 사이드 아이다루시가 쓴 〈함지야 Hamziya〉(1749)이다. 이슬람 문학의 강한 교훈적 전통을 바탕으로 19세기 케냐의 음와나 쿠포나 빈티 음샴, 무야카 빈 하지 알 가사니 같은 첫세대의 시인이 나왔다. 현대 스와힐리어 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탄자니아의 시인 샤반 로버트 이후 케냐의 아마드 나시르, 아브딜라티프 아브달라가 뒤를 이어 공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탄자니아의 에우프라세 케질라하비의 〈혼돈의 세상 Dunia Uwanja wa Fujo〉(1975)은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다룬 소설의 한 예이다. 다른 아프리카어 문학과 마찬가지로 스와힐리어 소설도 발표지면의 제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주요 아프리카어군에 속하는 쇼나어로 쓴 글은 1950년대 이전의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솔로몬 무츠와이로의 〈페소 Feso〉(1956)에서 보듯이 쇼나어 소설은 주로 영웅적 과거를 추적하거나, 문화적 가치들의 갈등(파트릭 차카이파), 근대화 및 도시화의 문제(존 마랑그완다) 등을 다룬다. 20세기초에 씌어진 초기 줄루어 문학은 대개 역사적·종교적인 작품들이다. 특히 들로모는 19세기와 20세기초의 줄루 왕들에 대한 일련의 소설을 발표했다. 레오나르드 음크왕고, 문투 쿨루도 줄루족의 영웅적 과거를 주제로 다루었으며, 서구화의 수용문제 역시 줄루어 문학의 주요주제로서, 들로모를 비롯하여 J. K. 응구바네, C. L. S. 니옘베지, D. B. Z. 은툴리, C. S. Z. 은툴리가 그 대표적 작가이다. 가장 뛰어난 줄루어 시인은 B. W. 빌라카지이며, 그밖에 J. C. 들라미니, 푸마질웨 미예니, N. J. 마크하예 등이 주목할 만하다.

 

줄루어 문학처럼 영웅적 과거와 전통 및 현대와의 대립이 주요주제로서, 코사어로 씌어진 초기 글들은 주로 19세기 중엽과 후반에 문학잡지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초기 시인으로는 사무엘 E. K. 음카이와 J. J. R. 졸로베가 대표적이다. 코사어 후기 산문문학을 보면 A. C. 조르단은 불가피한 변화의 국면에서 어떻게 전통을 유지해나갈 것인가를 썼고, Z. S. 캉굴레, K. S. 봉겔라는 도시와 지방을 극단적으로 대립시켜 전통과 서구화·도시화의 갈등을 묘사했다.

 

오니차 시장문학(── 市場文學) Onitsha market literature

 

20세기의 문학 장르로 반문맹파 작가들(학생, 풋내기 저널리스트, 택시 운전사 등)에 의해 씌어져 나이지리아 동부의 활기찬 오니차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감상적·도덕적인 노벨라와 소책자들.

 

펠릭스 N.스티븐, 스피디 에릭, 토머스 O.이구, O.올리사 등이 가장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이구와 올리사는 가두판매용으로 뛰어난 문학적 인물에 대한 희곡도 썼다.

 

오니차 작품들의 두드러진 2가지 특징은 서구화된 도시생활에 대한 유혹과 새로 들어온 이들에게 그 생활에 수반되는 부패와 위험에 대해 경고하려는 욕구이다. 전형적인 작품 제목으로는 〈로즈는 내 돈만을 사랑했다 Rose Only Loved My Money〉·〈술고래들은 술집을 천국이라 믿는다 Drunkards Believe Bar as Heaven〉·〈왜 어떤 부자들은 어떤 여자들을 믿지 못하나 Why Some Rich Men Have No Trust in Some Girls〉·〈여성과 사랑할 수 있는 방법 How to Get a Lady in Love〉·〈왜 갑자기 존 케네디는 삶과 죽음에서 고통을 당할까 How John Kennedy Suffered in Life and Death Suddenly〉 등이 있다. 감상적인 중편소설, 정치 소책자, 연애편지 쓰는 법, 금전 다루는 법 등의 안내서들은 모두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오니차의 책장사들은 현지에서 손등사기로 인쇄된, 분량은 보통 50장을 넘지 않는 값싼 소책자들을 가지고 북쪽에서 온 농부·어부·목동 들과 서부에서 온 코코아 상인들 옆을 누비며 행상했다.오니차 소책자들이 비록 문학적 가치는 적지만 널리 퍼진 반문맹의 독자들에게 영어를 향상시키는 기능과, 대도시에서 살면서 시골의 가치와 새로운 유혹과 생활방식의 혼란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당면 문제들에 착수하는 이중의 교육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전통적인 관습은 흔히 마지못해 지켜질 뿐이고, 시골에 물러나 있는 노인들은 종종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사고의 상징이 되어 그들이 사용하는 무식한 엉터리 영어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따라서 위험스런 도시는 비밀리에 대부분의 오니차 작가들에게 큰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나이지리아 최고의 문학적 인물들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잃어버린 아프리카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그들의 시장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러 면에서 17, 18세기 영국의 싸구려 책과 유사한 문학적 현상인 나이지리아의 싸구려 책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언급 없이도 작가와 독자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 유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 하위 문학 장르는 나이지리아 문학의 주류와 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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